진주만 복수가 절실했던 미국의 황당한 박쥐 프로젝트


인간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를 개발해왔습니다. 초창기 칼과 방패 그리고 창과 활 등을 비롯해 미사일과 전투기, 핵폭탄에 이르기까지 보다 많은 살상을 위해 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고 이는 전쟁의 성패를 갈랐죠. 이러한 무기에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물의 능력을 전쟁에 활용한 사례도 있는데 고대 전쟁에서의 코끼리나 기동력이 뛰어난 말을 타고 싸우는 것도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활용은 인간의 전쟁 기술이 발달하면서 조금씩 대체되었지만 다소 특이하게도 현대전쟁으로 분류되는 2차 세계대전에서 박쥐를 무기화하려던 계획이 있었습니다. 당시 진주만 공습으로 막대한 피해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미국이 일본을 향해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했던 박쥐 프로젝트의 전말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국립국방연구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전쟁 적용 아이디어를 연구, 수집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941년 12월7일 진주만 공습은 미군 뿐만 아니라 미국인 전체의 엄청난 충격이었고 애국심에 불타던 미국인들은 다양한 전쟁 아이디어를 국립국방연구위원회에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 접수된 대부분의 의견들은 실용적이지 않아 보탬이 안됐는데 그 중 일리노이주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던 아담스 박사가 멕시코에서의 휴가기간 동안 동굴에서 우연히 박쥐를 본 것을 계기로 박쥐 폭격기를 구상한 아이디어는 연구가치를 입증받고 루즈벨트 대통령 승인까지 거쳐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하게 됩니다. 



훗날 X-Ray 프로젝트로 명명된 박쥐 폭격기 프로젝트는 작은 소이탄을 박쥐에 매달아 일본 상공에서 풀어놓으면 박쥐의 특성상 도시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어갈 것으로 기대했고 타이머에 의해 폭탄과 함께 폭발하여 목조구조가 많은 일본에 많은 피해를 끼쳐 혼란을 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박쥐를 생포해서 가능성을 검토했고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멕시코 자유꼬리 박쥐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후 박쥐들이 자기 무게의 3배에 이르는 폭탄을 이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이에 맞춰 폭탄 소형화를 진행하고 그들을 운반할 장치의 개발에도 착수하며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죠.



미국은 이 프로젝트가 일반 폭탄은 167~400건의 화재를 내는데 비해 3,625~4,748건의 화재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유타주에 일본 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은 일본 주택과 동일하게 지어 박쥐 폭탄을 시험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죠. 



하지만 박쥐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2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고 30여차례의 실전 실험을 했지만 실험 과정에서 잘못된 타격으로 육군 비행장 보조 기지에 화재를 발생시키는 등 실전에서 사용되기엔 세밀한 조정이 필요했는데 이를 기다리는 것보다 즉시 포기하고 대신 보다 강력한 폭탄인 원자폭탄의 개발에 집중해야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죠.



결국 원자폭탄의 개발에 집중했던 판단은 적중했고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박쥐 폭격기 프로젝트는 진주만 공습으로 복수가 절실했던 미국의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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