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된 비극 앞두고도 작전 수행한 최초의 전투 잠수함


수면 아래에서 은밀하게 작전을 수행하는 잠수함은 현대전에서 중요한 전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핵에너지를 통해 동력을 얻는 핵잠수함은 디젤 잠수함처럼 수면 위로 떠올라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 막강한 비대칭전력으로 꼽히고 있죠. 이러한 능력때문에 불과 몇 개월 전에는 한국형 핵잠수함에 대한 찬반여론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최초의 핵잠수함은 1954년 미국의 노틸러스함이지만 잠수함에 대한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랜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류 역사상 바다 밑을 탐색하기 위해 잠수함을 연구한 흔적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최초로 전투 역할을 수행한 잠수함은 1864년 미국의 남북전쟁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비극을 예상하고도 작전을 수행한 최초의 전투형 잠수함 HL 헌리(Hunley)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인류가 바다 밑을 탐험한 흔적은 15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헌리 이전에 전투형 목적으로 개발된 최초의 잠수함으로는 1776년 등장한 상단의 거북이 잠수함이 있습니다. 예일대를 졸업한 천재 발명가 데이비드 부쉬넬이 선보였던 잠수함인데 당시 영국 전함 HMS 이글을 폭파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었죠.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중도에 포기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북이 잠수함의 등장은 잠수함이 군사목적으로 유용할 것이라는 판단의 계기가 되었고 그로부터 88년 뒤 최초의 전투 잠수함 헌리를 탄생시키게 되었죠.



헌리라는 이름은 당시 남부군에 소속되어 잠수함을 개발한 호레이스 로손 헌리라는 자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그는 성공한 남부 지배자인데 남북전쟁 당시 북부 연합군이 남부 항구를 봉쇄하여 화물과 물품 운송을 차단함에 따라 위기를 맞았을 때 강력한 북부 해군을 제압하기 위해 기존의 전투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두사람과 함께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잠수함 개발에 매진하게 되죠.



그들은 헌리가 탄생하기전에 파이오니어와 아메리칸 다이버라는 두대의 잠수함을 먼저 개발했습니다. 두 잠수함은 물에서 잠수함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데는 성공하지만 전자기 엔진이나 소형 증기 엔진을 동력으로 삼으려던 계획이 실패함에 따라 너무 느린 속도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죠.



당시 잠수함의 속도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아무리 물속에서 스텔스 기능을 발휘한다고 해도 기술력의 한계로 완벽한 스텔스가 어려웠고 무엇보다 자체동력을 가진 어뢰가 없었기 때문에 적에게 폭탄을 부착한 후 최대한 빨리 멀어진 상태에서 폭발을 일으켜야 했기 때문이죠.



결국 기존의 두 잠수함은 속도 문제로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고 그들은 동력엔진을 포기한 채 많은 사람을 통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헌리를 개발했는데 상단의 이미지와 같이 8명의 선원이 수동으로 크랭크를 돌려 동력으로 삼았으며 한사람은 방향을 조정하는 선장 역할을 맡는 형태로 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헌리는 실전에서 두차례 테스트를 거치는 동안 호레이스 로손 헌리 자신을 포함하여 승무원 12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당시 사고의 원인에 대해선 다른 의견들도 있지만 물속으로 들어갈 당시 해치가 열렸기 때문에 가라앉은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죠.



그렇게 가라앉았던 헌리를 육지로 인양하는 동안 남북전쟁 정세는 북부군에게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남부군은 헌리를 실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데 열을 올리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보다 확실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잠수함 아래쪽으로 창을 달아 적의 선체에 폭탄을 꽂고 트리거 장치로 폭파시키는 형태로 바꾸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폭발이 발생했을 때 헌리의 승무원에게도 위험한 방식이었습니다. 이에 남부군 장군인 보렐 가드는 작전에 반대했지만 조지 딕슨 중령을 필두로 용감한 지원자들로 인해 작전은 감행되었고 1864년 2월 17일 늦은 밤에 북부군 함선이던 USS 호우사토닉호를 겨냥하여 전투 잠수함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호우사토닉호는 침몰하며 155명의 승무원이 목숨을 잃게 되었지만 헌리의 승무원도 돌아오지 못했죠.



이처럼 역사에 남은 최초의 전투 잠수함이었던 헌리는 아쉽게도 남부군 소속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승리를 이끌었던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침몰 후 선체의 행방이 묘연했던 헌리가 현대의 기술력 발전으로 침몰 위치가 확인되면서 성공적으로 인양되었고 잠수함의 시설과 침전물 등을 통해 남북전쟁 당시의 삶에 대한 타임 캡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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